≪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
2016년 7월 6일 - 9월 5일
퐁피두 센터, 파리, 프랑스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 전시전경, 퐁피두 센터, 파리, 프랑스, 2016
사진: Florian Kleinefenn



보도자료

작가 양혜규는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7월 5일부터 9월 5일까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 개인전을 개최한다. 퐁피두 센터는 다양한 매체를 탐구해 온 양혜규의 동명의 블라인드 작품 신작을 선보인다. 퐁피 두 센터의 기념비적인 건축물과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설치작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는 일상적인 사 물들의 형태와 정서적인 지점들을 탐구하며, 사물들을 추상적인 구성으로 재배열하면서 본래의 맥락으로 부터 탈피시키는 양혜규만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프랑스 미술계에 소개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익숙해진 재료와 블라인드 설치작에 대한 위기감을 극복하고자 작가 양혜규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미니멀리즘 거장 솔 르윗의 큐브 연작을 재해석한 순백색의 블라인드 설치작 <솔 르윗 뒤집기>연작을 선보여왔으나, 자율적인 색과 형태를 재도입한 신작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를 통해 예기치 않은 ‘귀환’을 꾀한다. 이 작품은 일반적으로 격자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기하학적 형태를 띠면서도 일말의
서사성을 제시한다.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는 입장권 없이도 입장이 가능한 퐁피두 센터 중앙 홀에 위치한 총 높이 13미터로 지하 1층부터 2층까지 세 개의 층을 아우르는 포럼 공간에 설치되어 민주적이며 진보적인 작업의 발표장으로 여겨진다. 포럼 공간은, 너비 약 100평방미터 규모의 넓이로 지상 층으로 뚫려 있어, 미술관의 중심된 안내 역할을 하는 중앙 홀은 물론 지하 공간 등, 다양한 미술관 내 활동을 섭렵하는 대중적이며 개방적인 통로로 기능한다. 때문에 관람객은 1층의 난간 주위를 걷거나 지하로 난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양한 높이와 각도에서 작품의 위, 아래와 안팎을 고루 관람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양혜규의 블라인드 작업의 핵심적 요소는 반투명성과 투명성 사이의 긴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는 미술관 전면 유리 벽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양에 따라 인상을 달리하며 내외부의 관계성을 극대화한다.

제목에 등장하는 그리스어 누스(nous)란 지적 능력(intellect), 지성(intelligence), 이해(understanding), 마음(mind), 사고(thoughts), 이성(reason)등을 가리킨다. 또한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누스’란 우주의 원리에 상응하여 진리와 상식을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지각 능력 및 마음의 활동을 가리킨다. 작가는 블라인드 설치작과 씨름해 왔던 지난 10년동안 이 단어를 작품의 주요한 개념으로 품어 왔다. 구체적인 현상과 역사, 사건과 인물을 새로운 미디어와 통신 환경을 통해 손쉽게 인식할 수 있는 현재, 과연 우리는 어떤 형태로 이러한 환경을 표현할 수 있을까? 동시에 지식과 정보가 손쉽게 소비되거나 습관적인 오류로 간략화되는 연속 현상에 우리는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가? 나아가 우리는 왜 끊임없이 질문하고 사고 하는가? 특히 아감벤 등 이러한 지적 사유의 직감적 잠재력을 가리키는 현대 철학의 ‘누스’라는 뉘앙스를 가진 단어 사용은 양혜규 작가가 질문하는 시각적 추상성과 맞닿아 있다. 재차 우리가 인식하고 동시에 의문시하는 능력이자 본성에 가까운 이 사고, 즉 재차 촉구되는 인간의 지성과 마음의 활동 자체를 되묻는다.

각각 초록빛 혹은 연보라빛을 띤 두 가지 십자형 블라인드(총 200여 개) 구조로 구성된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는 시각적으로도 구분이 가능한 네 부분의 부피가 지그재그로 쌓여져 있다. 각 부분은 녹색조와 연보라 빛이 교차하면서 색 띠의 혼합이 일어나며, 블라인드가 놓여있는 각도와 형태, 그리고 보는 방향에 따라 한 가지 주된 색만을 보게 된다. 기존 블라인드 작업에서 최상층에 설치되어 작품을 비추는 도구적 요소에 그쳤던 LED 조명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에서는 블라인드 사이에 다양한 높이에 삽입됨으로써 작품의 적극적인 구성요소로 등장한다. 이렇게 빛 또한 작품의 일부로 녹아 들어 블라인드의 교차 구조로 형성된 흐르는 듯한 동선과 맞물리면서 작품의 유동성이 강화되고 엄격한 기하학적 패턴으로부터 해방된다.

지하층에는 양혜규 작가 초기 작업의 중요한 감성적 단서가 되는 2004-2006년 작인 <비디오 삼부작 (Video Trilogy)>과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에서 첫 상영되었던 <쌍과 반쪽 – 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 (Doubles and Halves – Events with Nameless Neighbors)>이 각각 영사된다. <비디오 삼부작>을 통해 자리 잡은 작가 특유의 자기 성찰적이며 명상적인 독백을 들려주되, <쌍과 반쪽>의 음성과 영상은 연동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분리된 형태로 재생되면서 서로 다른 길이의 영상과 음성 사이에 끊임없는 새로운 조합을 탄생시킨다. 즉, 이 작품 속 영상과 음성은 한 쌍을 이루지 못하고, 두 배 혹은 반쪽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비현실적인 ‘쌍’을 이루는 두 가지 매체는 작가가 지속적으로 주목하는 주체의 불완전함과 관계의 불완전성을 가리키며, 타자와의 관계성과 그 사이에 자라나는 공간을 탐색한다.

한편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전과 연계하여 지난 10여년 간의 양혜규 블라인드 설치작의 전개를
총망라한 동명의 도록을 퐁피두와 프랑스의 저명한 출판사 레프레스뒤렐(Les Presses du Réel)과 공동 발간한다. 이 도록의 발간과 함께 퐁피두센터 내 강당에서 10월 21일 저녁 7시에 작가와의 대화가 개최 될 예정이다.

 

전시 작품

좀처럼 가시지 않는 누스, 2016


쌍과 반쪽 - 이름 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 2009

비디오 삼부작, 2004-2006 (펼쳐지는 장소, 2004, 주저하는 용기, 2004, 남용된 네거티브 공간, 2006 )


도록

Lingering Nous,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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